100%
57살 김범진의 뇌 속에 생존해 있는 도파민계 신경세포의 비율이다. 신경세포가 소멸한 만큼 활동에 장애가 생겼다. 걸음걸이가 둔해지고, 보폭이 줄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다. 숟가락질을 하기 어려워 밥을 자꾸 흘린다. 양치도 맘대로 되지 않아 팔이 아니라 고개를 흔들어 이를 닦는다. 인지장애가 와서 판단력 지수는 10% 이하가 됐다.
지난 7월3일과 19일 세종시에서 두 차례 인터뷰를 하면서도 김범진은 과거를 되짚는 질문을 버거워 했다. 더욱 문제는 이미 손상된 세포를 다시 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수치가 줄어들어 몇년 뒤 20~30%가 되면 김범진은 휠체어에 의존해야 한다.
화염과 연기에 휩싸인 건물을 헤집고, 물살에 휩쓸린 사람을 건져내고, 등산객을 들쳐업고 계룡산을 뛰어다닐만큼 다부진 몸이었다. “튼튼체질이어서 버틴 것 같다”고 했다. 마음도 굳건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늘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어떤 상황과 마주해도 “나는 괜찮다”를 되뇌었다. 24시간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 과로하는 김범진에게 걱정을 건네면 “세상에 아프고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한테 그런 걸 묻냐”며 웃어넘겼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올해 초부터였다. 오른쪽 몸부터 서서히 움직임이 둔해졌다. 우울증과 변비, 소화불량도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거겠지’ 생각하며 애써 증상을 외면한 건 곧 큰딸 김한나(31)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큰 일을 치르는 딸에게 걱정거리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버텼다. 하지만 지난 3월 딸의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봇물 터지듯 무너졌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으며, 불면증도 악화했다. 몇 군데 병원을 오가며 진단을 받다가 방사선 물질을 투여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까지 하고나서야 진단명을 알 수 있었다. 파킨슨 병이라고 했다.
연기
1991년 10월17일 밤 9시50분께 대구 서구 비산4동 농춘빌딩 지하 거성관 나이트클럽. 한 30살 청년이 인근 주유소에서 사온 휘발유를 클럽 무대 위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클럽 종업원이 “촌놈에게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말해 화가 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불은 순식간에 무대 위 가연성 카페트와 무대 주변 장식물, 의자와 탁자 등에 옮겨 붙었다. 방염 처리가 안 되어 건물 안팎이 온통 가연성 유해물질로 뒤범벅이던 시절이었다. 유해물질이 타면서 발생한 연기와 유독가스는 883㎡(267평) 넓이의 클럽 내부를 잡아먹듯 뒤덮었다.
25살 김범진은 이날 동료 소방관 54명과 함께 현장에 투입됐다. 방화복이 없어 방수복을 입어야 했고, 방열장화가 없어 고무장화를 신어야 했을만큼 장비가 열악했다. 공기호흡기도 몇 개 없었다. 사수는 임용 2개월 된 초보 소방관 김범진에게 “나를 놓치면 죽는 거다”라고 외쳤다. 주불이 잡힐 때까지 지원 업무를 하던 김범진은 화재 발생 14분 만에 진화가 완료된 뒤 클럽 내부에 들어가 수색 작업을 했다
불이 날 당시 클럽에는 150여명의 손님이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화재 발생 초기 누전으로 인한 불로 착각한 클럽 종업원이 전기 스위치를 내리면서 조명이 모두 꺼졌다. 출구를 찾던 사람들은 어두운 지하에서 소리치며 뒤엉켰다. 발화 지점인 무대 쪽에서 3명, 무대 반대편 화장실에서 10명이 쓰러져 숨졌다. 출구 옆에 있던 화장실을 출구로 착각했던 이들이 탈출하지 못한 것이 컸다. “사람은 밝은 곳을 지향하는 본능이 있어요. 위기 상황에서 조명이 켜진 화장실을 보고 출구라고 생각하고 간 거죠.”
김범진은 질식해 숨진 사람들과 불에 타 숨진 사람들을 한 명씩 수습했다. 그러면서 계속 연기를 마셨다. 여기에는 불이 꺼진 뒤에 나오는 2차 유독가스도 포함돼 있다.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어요. 계속 샤워만 했죠. 목구멍에 때를 벗긴다고 삼겹살을 먹고 소주를 마셨는데도 매캐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어요. 침을 뱉으면 새까만 침이 계속 나오고, 코를 풀어도 새까만 콧물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999건
이 화재 출동이 세종시 조치원소방서 현장대응단 단장인 소방령 김범진의 시작점이었다. 김범진은 이후 32년 동안 본인 스스로 기록으로 확인한 것만 화재 출동 1531건, 구급 출동 4849건을 소화했다. 1년 평균 199건 넘는 화재와 재난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그 수많은 현장들에서, 화염 찌꺼기와 연기 속 유해물질들은 얇고 질긴 습자지처럼 층층이 김범진의 온몸에 쌓여갔다. “소방관한테 연기는 숙명이죠. 공기호흡기가 있어도 안 마실 수 없어요. 무전소통을 하고 카메라를 찍고 그러면서 유해인자 노출이 더 많아지는 경향도 있어요.”
김범진의 몸을 무너뜨린 건 유해물질만이 아니다. 김범진은 10년째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참혹한 현장을 본 기억, 화재나 재난 현장에서 미처 구하지 못한 이들의 울부짖음이 그를 괴롭힌다. “1992년 5월 대구 계명대 학생회관에서 불이나 4명이 숨지고 9명이 중화상을 입었어요. 불을 피해 계단을 올라가던 주검이 참혹하게 무너져 있었던 장면을 봤지요. 한 신경정신과 3층에서 난 화재도 기억이 납니다. 입원실이 창살로 막혀 있었어요. 검은 매연 속에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하는데, 제가 슈퍼맨도 아니니까 다 구출할 수가 없죠. 죄책감이 큽니다.”
지휘관이 되면서 생사를 좌우하는 순간적인 판단에 대한 중압감도 그를 짓눌렀다. 지휘관이 격앙된 현장에서 목격자들의 진술에 담긴 과장된 정보를 걸러내지 못하면 때로 더 많은 시민과 소방관의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부담도 병의 원인이 됐다고, 김범진은 생각한다. “재난은 살아있는 거거든요. 100년을 출동해도 똑같은 현장은 하나도 없어요. 시시각각 변하니까요.”
악몽
그래서일까. 김범진은 자주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주로 브레이크가 없는 기차의 운전사가 된다. 수많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선 달리는 기차를 멈춰 세워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놓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발버둥친다. 아내 권소희(52)는 김범진이 밤새 허공에 발길질을 하거나 벽을 주먹으로 치곤 한다고 했다. “어느날부터 욕도 하더라고요. 왜 하필 저 사람에게 병이 왔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결국은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같아요.”
딸 김한나는 아버지가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5년 전이 떠올랐다고 했다. 5년 전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머뭇거리며 “명예퇴직을 생각해봤다”고 말했을 때, 가족들이 모두 웃으며 “정년까지 부탁드려요”라고 답했던 것이다. “그때 이미 한계가 와서 하신 말씀이지 않을까 싶은 거죠. 그때 그냥 그만두시라고 할 걸, 제가 힘내시라고 화분까지 보냈어요. 지금은 그 화분을 깨버리고 싶어요.” 김한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년이 3년 5개월 정도 남은 김범진은 그러나, 지난 7월 중순부터 병가를 써야 했다. 퇴직 때까지 현장을 뛰어다니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달 2일에는 법무법인 감천을 통해 인사혁신처에 파킨슨 병에 대한 공상 신청을 냈다. 투병 비용 부담을 가족에게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근무 이력을 증명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전에 근무했던 충남 공주소방서 등을 찾아가 출동 기록들을 받았다. 그나마도 옛날 기록은 폐기된 것도 많았다. 화재와 구급 출동 6380건은 그렇게 확인한 32년 동안의 흔적이다.
공상
소방관에게 생기는 파킨슨 병은 업무와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화재 현장에서 철제나 나무, 플라스틱, 섬유 등이 연소하며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다량의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일산화탄소, 모직 등이 탈 때 나오는 황화수소·시안화수소·질소산화물, 플라스틱이 타면 나오는 염화수소·아크롤레인과 기타 유해 중금속(납 카드뮴) 등이 분출한다. 연기 속에는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트라이클로로에틸렌, 포름알데하이드, 벤조피렌도 포함돼 있다. 이런 유해물질들은 폐암, 백혈병, 비호즈킨림프종, 방광암, 신장암, 중피종 등의 암 발생 위험을 키운다.
“과거 유럽의 많은 ‘굴뚝청소부’ 아이들이 암에 걸렸던 일이 증명된 것이 인류 최초의 직업병 산업재해 사례라고들 합니다. 이는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함유된 검댕 때문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소방관에게 재현될 가능성이 큰 겁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의 말이다.
특히 일산화탄소의 경우 저산소증에 의한 뇌 손상을 부르고, 이런 손상이 누적되면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서서히 소실되는 파킨슨 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계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다만 소방관의 파킨슨 병에 대한 역학 연구가 제대로 이뤄진 적은 아직 없다. “일산화탄소 급성 중독으로 실신을 하거나 기억을 잃었던 경우에 파킨슨 병 발생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소방관의 경우에도 저산소증이 누적되면 퇴행성 신경계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경숙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의 설명이다.
지난 8일 인사혁신처는 파킨슨 병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며 김범진의 공상을 인정했다. 김범진의 경우 과거 무릎 연골이 찢어져 공상 신청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드물게 인정된 케이스다. 경남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 소방관은 김범진과 달리 2017년 파킨슨 병 공상 불승인 결정을 받았다.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상추정법(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에도 파킨슨 병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공상추정법은 공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아도 특정 직무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법이다. 미국 인디애나주와 뉴욕주 등의 주 정부에서는 소방관의 파킨슨 병이 공상추정법 대상이다.
퇴직 이후 평생 투병할 김범진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파킨슨 병은 시간이 갈수록 몸의 부담과 불편함이 심해지는 병이어서 장기적으로 훨씬 더 힘들어집니다.” 김범진의 주치의인 신채원 세종충남대병원 교수(신경과)의 말이다. 이 때문에 김범진에겐 공상 인정 외에 치료되기 어려운 질병이나 부상을 안고 퇴직했을 때 지급되는 장해연금이나 국가유공자 인정이 절실하다. “원래는 퇴직하고도 70살까지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손을 덜덜 떠는 파킨슨 병 환자를 누가 쓸까요.”
김범진은 사회를 위해 헌신하다 붕괴한 몸을 국가가 돌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뇌가 굳지 않기를 가장 바란다. 가족들에게도 “팔 한 쪽, 다리 한 쪽은 잃어도, 못 써도 좋으니 정신만 온전했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하는 까닭이다.
“치매가 오는 게 가장 걱정이에요. 내 주위 사람을 못 알아본다는 게 슬픈 거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좀….” 김범진이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