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
몸에 새겨진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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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은 재난을 수습하며 늙어간다. 재난은 이들에게 부상과 질병, 때로는 죽음을 안긴다. 그런데 소방관들은 정작 망가지는 자신의 몸보다 구조하지 못한 시민들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며 산다.

한겨레는 평생 재난이 남긴 부상과 질병을 안고 늙어간 소방관 15명과 이들의 가족 및 동료 12명을 전국을 오가며 만나 2달 동안 심층 인터뷰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늙은 소방관들의 평균 나이는 58살, 평균 근무 경력은 29.1년이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국가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봤다.

민원

지난 6월17일 오후 5시45분께. 경기 수원 광교 이의119안전센터(이의센터)에 한 통의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인근 ㄱ아파트 주민이라고 밝힌 민원인은 구급대원이 받은 통화에서 사이렌 소리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아파트 입주자 대표인데, 소음 관련 탄원서를 보낼 예정”이라며 말했다. 이후 6월28일 해당 입주자 대표와 관리소장이 이의센터를 방문해 사이렌 소리를 줄여달라는 민원을 제기했고, 이의센터장 등은 간담회를 열고 이들의 민원 사항을 들었다.

이의센터를 관할하는 수원소방서에서도 지난 7월4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소방서 쪽은 “사이렌 음향의 일률적 완화는 규정상 어렵지만, 출동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필요 최소한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소방차량이 현장에 최단 시간 내 도착할 수 있도록 출동여건 및 교통 상황 등을 반영해 시스템적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보도되면서 민원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의센터에 컵라면을 보내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의센터는 지난 11년 동안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가건물 신세로 표류했다. 2012년 광교신도시에 소방 수요가 늘면서 이의센터를 경기도 광교신청사 부지에 짓기로 하고 우선 가건물로 임시 센터를 열었다. 그런데 2018년 정식 센터를 짓기로 한 부지 인근 주민들이 역시 사이렌 소음과 교통 체증을 우려하며 민원을 제기해 센터 건립이 무산됐다. 돌고 돌아 지난 5월에야 기존 부지에 신청사가 문을 열고 가건물 신세를 벗어났는데, 다시 한 번 소음 민원에 휘말린 것이다. 민원인 쪽은 “소음 관련해 소방서와 협의한 것이고, 원만히 해결됐다”고 해명했다.

검은 연기가 건물을 감싸며 소용돌이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지하 5층, 지상 41층으로 예정된 주상복합 건물은 17층까지 지어진 상태였다. 지하 2층에서 인부들이 산소절단기로 철재를 자르다 튄 직경 3㎜짜리 불티가 5.4m 뒤에 쌓여 있던 폴리우레탄 폼 단열재에 옮겨 붙으며 불이 난 것이다. 인부들이 하나 둘씩 탈출해 나오다 한 사람이 “지하 4층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외쳤다. 이의센터 화재진압팀장인 소방위 장남일(당시 55살)은 지체없이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대원 2명이 뒤따랐다.

지하 1층을 거쳐 2층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어둡던 시야가 갑자기 확 밝아졌다. 웅크려 있던 화염이 폭발하며 2m가 넘는 역류를 일으켰다. 불이 산소를 소진하면서 밀폐된 공간을 높은 압력과 고온 상태로 만드는데, 소방관들이 이 공간을 뚫고 들어가면서 외부의 산소가 한꺼번에 유입되면 폭발이 발생한다. 이를 ‘백드래프트’(Backdraft)라고 일컫는다. 많은 소방관들의 목숨을 앗아가 ‘소방관의 악몽’이라고도 불린다.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염의 기운이 장남일을 훅 덮쳐왔다.

“피해!”

선두에 선 장남일의 외침에 대원들은 2~3걸음 후퇴한 뒤 돌아나갔다. 그 사이 불은 천장을 타고 돌았다가 다시 아래로 향하면서 돌아서는 장남일을 가로막았다. 대원들보다 겨우 1~2초 정도 움직임이 늦었는데, 그에게만 단열재를 녹인 불덩어리가 등 위로 쏟아졌다.

그 날은 2017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였다. 장남일에게 휴일 근무는 익숙하다. 직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편히 쉬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좀 더 고생을 하자”라는 말을 주고받고 겨우 몇 분이 지났을 때였다. “광교 신도시 하동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 전화가 빗발치면서 출동 벨이 울렸다. 이의센터에서 화재 현장은 1㎞ 거리였다. 장남일과 소방관들은 4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최소 10명 이상의 인부가 작업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10명이 각자 어디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모두 탈출한 건 맞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하에 인부가 있다는데 거기를 그럼 누가 들어가겠어요.” 지난 7월10일 수원에서 만난 장남일이 그날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남일은 등 위로 불덩어리를 덮어쓰고도 몸을 움직였다. 몽롱한 정신상태와 시야를 가리는 화염 속에서 탈출로를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소방호스 덕이었다. 외부와 연결된 소방호스를 붙잡고 온힘을 다해 계단을 올랐다. 27년 동안 화재 현장을 다니며 몸으로 터득한 생존법이다. 하지만 그의 방화복 등은 까맣게 붙타 있었다. 손등에 3도, 등에 2도의 중증 화상을 입었다. 손등 감각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돼 간단한 응급조치를 한 뒤, 크리스마스 교통체증 탓에 헬기에 실려 화상전문병원인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으로 향했다.

불은 그날 오후 5시23분에 완진됐다. 29살 인부 1명이 숨졌고, 장남일이 중상을 입었으며, 소방관 1명과 인부 13명이 경상을 입었다. 다만 인부가 외쳤던 지하 4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숨진 인부는 지하 1층에서 작업하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한 것이었다. “저희가 지하로 가는 과정에서, 그 분을 못 구했어요.” 장남일은 자신의 중증 화상보다 인부의 죽음을 말할 때 더 버거워했다.

火印(화인)

피부가 불에 타 죽어버린 손등과 등에 새살이 나도록 해야했다. 그렇게 하려면 화상으로 손상된 부위를 소독하고 죽은 피부를 긁어낸 뒤 감염으로부터 상처 부위를 보호하는 드레싱 치료를 매일 해줘야 했다. 중증 화상 환자가 겪는 드레싱 치료는 극한의 고통을 안긴다. 상처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기절하는 사례도 보고될 정도다. “그냥 계속 새 살이 나오게끔 상처를 긁어내야 하더라고요. 매일매일매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장남일을 치료한 조용석 한림대한강성심병원 교수(화상외과)는 이렇게 말했다. “중증 화상환자들은 면역력이 낮기에 드레싱으로 균수를 줄여야 재생도 되고 패혈증과 다발성장기부전도 방지할 수 있어요. 식염수로 상처를 닦고 메디폼(습윤밴드)를 붙이는 과정인데, 그 통증의 정도는 환자가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최대 등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장남일은 그런 치료를 9개월 동안 입원하며 매일 받았다. 엉덩이에서 살을 떼어내 손등에 이식하는 수술도 두 차례 받았는데, 이식한 피부가 움직임이 많은 손 근육에 적응하지 못해 관절이 굳어가면서 한동안 물건을 집어올리기도 어려웠다. 퇴원 뒤 1년 재활을 했고, 또 1년 더 통원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6년이 흘렀음에도 그의 왼쪽 등에는 갈색의 동그란 화상 흉터가 선명하다. 양쪽 손등에는 다른 주변 피부 표면과 색과 질감이 달라보이는 이식 자국이 남아 있다. 지금도 그 부위에서는 땀이 나지 않아 여름엔 가렵고, 겨울엔 시리다. 초겨울이 되면 외출할 때 꼭 장갑을 껴야하는 까닭이다. “현장에서 탈출하는 과정이 불과 20초였겠지요. 그 사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어요.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날의 환청이 들리고 2~3개월은 꿈에 나왔어요.”

한겨레가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 동안 화상으로 공무상 요양을 신청한 소방공무원은 25명이었다. 1도 화상이나 작은 면적의 화상은 일상처럼 안고 살아가며 공무상 요양을 굳이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를 고려하면, 화상을 안고 살아가는 소방관들의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의 화인으로 인해 장남일은 그렇게나 염원하던 정년퇴임을 하지 못했다. 복직한 뒤 다시 화재진압 현장 업무를 지원했는데, 출동 벨 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악몽이 재연된 것이다. 20초 남짓한 그날의 탈출 장면이 다시 머리를 가득 채웠다. 밀폐된 공간이나 지하실에 가기 어려워하는 폐소공포증이 생겼고, 소방차를 보고도 흠칫 놀라게 됐다. 결국 정년을 1년 앞둔 2021년 12월 명예퇴직을 택했다. “저는 소방관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정년까지 갈 줄 알았고, 가야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명예스러운 건데 중간에 명예퇴직을 하면서 참 이거는 불명예스럽지 않나 싶죠. 그만둔다고 하니 가족들은 만류를 하지 않았어요. 그걸 보면서 ‘그동안 내가 출근하는 걸 보면서 걱정스러웠겠구나’ 싶었어요.”

불명예, 그리고 훈장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 중증 화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불명예’ 퇴직을 결정한 장남일과 남아 있는 이의센터 소방관들에게 이의센터에서 발생한 소음 민원 논란은 그 어떤 부상이나 질병보다 후유증을 크게 남겼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전국에 있는 소방공무원 6만4054명(소방청 2022 통계연보)에게도 고스란히 무력감을 전달했다. “다쳤을 때는 지역 주민들이 돕고 싶다고 인터넷에 글도 많이 올렸어요. 그런데 막상 신청사가 들어오니까 그때랑 마음이 달라진 것 같아요. 거기서 일하다 이렇게 다친 사람도 있는데, 섭섭하지요.”

하지만 장남일은 소방관으로서의 33년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가 비록 현장에서 다치기는 했지만, 진짜 다친 거는 그냥 진짜, 제가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얻은 훈장이다 생각해요. 지금도 그래요. 제가 다칠 정도로 열심히, 진짜 일을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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