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소방관이 인사혁신처에 공무상 요양(공상)을 신청해 승인된 건수는 1075건이다. 3년 전부터 해마다 1천건을 넘나든다. 한겨레가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전국 소방관이 부상·질병을 입고 공상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경위조사서 761건(제출된 조사서 전수)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84%(639명)에 이르는 소방공무원이 디스크나 골절상 등 근골격계 손상과 외상으로 공상을 신청했다. 골절상이 99명, 근육·인대·아킬레스건 등 파열이 107명, 목과 허리디스크 58명, 목·팔목·무릎·발목 등 염좌가 94명 등이었다. 2도 이상 화상을 입은 이도 25명이나 됐다.
사고로 일어난 부상 유형은 수관이나 들것 등 중량물을 옮기는 작업 등에서 발생한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223명, 다리가 접질리는 등의 넘어짐 110명, 교통사고 81명 순이었다. 떨어짐(39명)이나 부딪힘(34명), 출동 현장에서 폭행 피해(33명)도 적지 않았다.
최근 1년 간 소방관
근골격계 손상 및 외상 이유
자료: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소방청
더욱 문제는 중량물 작업과 화재 현장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무리한 교대근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축적돼 발생하는 질병이다. 2020년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3년 동안 공상을 신청한 질병 경위조사서 264건을 분석해보니, 암 환자는 20.1%(53명)나 됐고, 암 환자 중에선 화재진압대원이 75.5%(40명)나 됐다. 암은 유형별로 신장암 7명, 폐암 6명, 전립선암 5명, 방광암 2명 등이었다. 김인아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소방관은 폐암, 백혈병 같은 혈액암, 방광암의 발병 위험이 큰 걸로 알려져 있다”며 “국제암연구소(IARC)는 소방관이라는 직업 자체를 암 발현 가능성이 높은 1그룹으로 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근경색·뇌출혈 등 심·뇌혈관 질환을 앓는 소방관도 19.3%(51명)나 됐다. 목·허리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황은 63명,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32명, 사이렌 소음으로 인한 난청은 22명 있었고, 파킨슨 병을 앓는 이도 5명이었다.
최근 3년 소방관 ‘구급대원’
‘화재진압 · 화재조사대원’
질병 청구 현황
화재조사대원총87건
자료: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소방청
이런 상황임에도 소방관의 질병에 대한 국가의 공상 승인은 인색하다. 인사혁신처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심사 과정에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질병으로 공상을 신청한 소방관의 41%가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소방관의 전체 공상 승인율이 89%이고, 사고로 인한 신청 승인율이 95.7%인 것과 뚜렷이 대조된다. 특히 암의 경우 승인율이 51%, 심혈관질환은 57%에 그쳤다.
최근 4년 간 소방관
공무상 질병 승인율 현황
(61)75.0%
(12)70.0%
(42)64.7%
(187)58.0%
(40)51.2%
(63)50.0%
(2)42.7%
(32)30.8%
(20)
자료: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인사혁신처
승인 거부 사유는 뭘까. 오영환 의원실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인사혁신처의 공상 불승인 통보서 79건을 분석한 결과, ‘인과성’이나 ‘공무 연관성’이 불투명하다고 언급된 게 35.4%(28건), 근골격계나 신경계 등은 ‘퇴행성 질환’이나 고령화에 따른 현상이라는 언급이 19%(15건)로 주를 이뤘다.
문제는 인사혁신처의 불승인 결정이 재판에서 적지 않게 뒤집힌다는 점이다. 최근 5년 동안 종결된 인사혁신처의 공상 불승인 취소 소송 5건 가운데 1건 이상(21%)이 소방관의 승소로 뒤집혔다. 2015년 방광암을 진단받은 소방관 ㄱ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7년 공상 신청을 했으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는 ‘명백한 상관 관계’가 없고 ‘체질적 요인’이 작용했다며 불승인했다. 2020년 나온 1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방광암 환자 20~25%가 직업병이라는 감정의 의견 △소방관의 방광암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연구 등을 근거로 공상을 인정한 것이다. 의사 출신 변호사인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는 “재해보상심의회에서 의료인들이 내는 의견은 의학·과학 등의 근거에 의해서만 이뤄지지만, 재판에서의 인과관계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일만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판단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공상 신청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28년차 소방관 김분순(56)이 지금껏 받은 병원 진료 기록은 27쪽에 달한다. 근골관절염, 연골파열, 척추 협착 등 근골격계 통증과 갑상선암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하지만 김분순은 지난 7월 ‘근골관절염’ 하나에 대해서만 정부에서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공상 승인을 받았다. 복잡한 절차와 더불어 업무와 질병의 인과 관계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탓이다.
이런 일이 이어지자 2020년 소방청에선 재해보상태스크포스(TF) 팀을 신설해 소방관들을 돕기 시작했다. TF팀은 지난해 11월 ‘재해보상전담팀’으로 정식 출범해 역할을 하고 있다. 팀에서 재해보상 총괄을 맡는 김수근 소방청 보건안전담당관은 “전국 소방관서에서 개별적으로 하던 공상신청 업무를 전담팀으로 모아 전문성을 개선하고 있다”며 “서류를 일관성 있게 제출할 수 있고, 입증 서류가 부족해 불승인됐던 사례도 적어졌다. 의료적 역학조사서도 만들어 자료로 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담팀이 생기면서 공상 신청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최근 6개월 동안 사고 뒤 40일 이내 공상신청률이 23.7%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담팀이 없었던 지난해 상반기(17.4%)보다 6.3%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공상 서류를 보완하라는 요구를 받는 비율도 60%에서 31.1%로 줄었다.
하지만 전담팀은 소수 인력이 과도한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 재해보상 담당자는 3명뿐인데, 이들이 올해 상반기 2349건의 재해보상 업무를 처리했다. 채진 목원대 교수(소방안전학)는 “직업병 연구 인력까지 충원해서 재해보상 지원 조직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의학적 입증’에만 매몰된 재해보상심의회의 심사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윤진하 연세대 교수(예방의학)는 “질병이 불승인된 이유를 보면 한마디로 업무와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인데, 심의회에서 ‘모른다’는 곧 ‘아니다’로 판단된다”며 “사회가 특정 분야 의학 지식을 쌓지 않은 책임이 소방관에게 있는 게 아닌데 소방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소방관의 공상 인정 폭을 넓기 위해선 제도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부터 위험 환경에 노출된 공무원이 특정 질병에 걸리면 심의를 거치지 않고 공상으로 인정하는 ‘공상추정법’(공무원 재해보상법 개정안)이 마침내 시행됐지만, 이미 추정하는 질병의 범위가 너무 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감천의 이영만 노무사는 “인정되는 질병의 종류가 너무 적은데다, 인정되는 암이지만 노출 기간이 맞지 않거나 노출 기간은 충족하는데 규정된 암은 아닌 경우에 대해서도 검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교수(직업환경의학)도 “연구를 통해 대장암이나 전립선암, 신장암 등으로 (추정 범위를) 확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공상추정법을 발의한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제적으로 소방관 직무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받는 특이암 중에 들어가지 않는 암들이 많다”며 “화재조사요원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점도 문제다. 화재조사에는 소방만이 아니라 경찰도 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있다”고 말했다.
재난 현장에 대응하는 소방관의 전문성을 믿고 맡길 줄 아는 시민적 합의도 필요하다. 지난 3월6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한 주택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하다 숨진 성공일 소방교의 사례가 한 예다. 소방청이 작성한 ‘전라북도 김제시 단독주택 화재 순직사고 관련 조사·분석 결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보면, 당시 성 소방교는 격앙된 주민의 요구 끝에 위험한 현장에 재진입했다가 끝내 순직했다. 미국의 소방지휘시스템은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위험 감수 △구할 수 있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조금 감수 △이미 잃어버린 생명 혹은 재산을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소방청의 대책 보고서 역시 “화재현장 군중의 통제되지 않는 위험한 행동은 현장지휘관 및 대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불이 나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나올 때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시민들이 소방에 협조를 해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다른 분들이 사시잖아요.”
지난달 11일 한겨레와 만난 고 성공일 소방교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