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일본 도쿄 남쪽 사가미만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이 진행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2015년 일본 도쿄 남쪽 사가미만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이 진행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의 제주 국제관함식(10월 10일~14일) 참가를 계기로 ‘욱일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와 해군이 최근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일본은 여전히 “비상식적 요구”라며 거부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국의 자제 요청은 옛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가 국내에서 버젓이 휘날리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국내 민족주의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일본은 욱일기가 한국인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으로서도 이번 논란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면서 양보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한·일 양국간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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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게양 국제법적으로 문제 없나

통상 국제법적으로는 해군 함정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인정된다. 해군 함정은 외국의 영해에 들어가더라도 그 나라의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그 함정이 소속된 나라의 법이 통용되는 구역으로 인정된다. 군 당국자는 “죄를 지은 범법자가 외국 함정으로 도망가더라도 함정이 소속된 나라의 동의없이는 범법자를 체포할 수 없다는 게 국제법 규정”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외국 함정이 어떤 기를 어떻게 달지는 전적으로 외국 함정이 결정할 문제이며, 이에 대해 다른 나라가 왈가불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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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국제 관례라는 건 있다. 함정이 바다에서 항해할 때는 선미에 함정이 소속된 나라의 국기를 단다고 한다. 그리고 함정이 외국의 항구에 기항하고 있을 때는 선수에 그 함정이 소속된 나라의 해군기를 추가로 게양한다. 해군 당국자는 “바람이 거센 바다의 특성상 깃발을 많이 달면 항해할 때 거치적거리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함정들이 항해할 때는 이 함정이 어느 나라 소속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국기 하나만 게양한다. 이게 국제 관례로 정착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관례에 따르면 일본 해상자위대가 우리나라 항구에 기항할 때 일장기와 함께 해상자위대의 깃발인 욱일기를 게양하는 게 이상할 게 없는 셈이다.

욱일기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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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제 침략의 아픈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욱일기 게양을 단순한 국제 관례로 치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는 욱일기를 “전범기”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역사적 배경을 보면 욱일기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군의 침략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70년 욱일기를 육군 깃발로, 1899년엔 해군 깃발로 삼았다. 일본은 이 깃발을 앞세우고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반도 지배권을 확보했고, 1931년엔 만주사변, 1937년엔 중일전쟁, 1941년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당연히 욱일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일제 침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 때문에 욱일기를 과거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앞세우고 진군했던 ‘하켄크로이츠’가 1945년 독일 패망 이후 ‘전범기’로 규정돼 폐기된 것과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일본에선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는 다르다”는 시각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켄크로이츠는 나치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상징이지만, 욱일기는 애초 일본 민간에서 축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돼 왔던 전통 문양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은 이와 관련해 누리집에 “(패망 이후) 새로운 자위대의 상징으로 육상자위대기와 해상자위대의 자위함기의 디자인이 널리 공모되었다. 육상 자위대는 욱일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옛 육군과는 다른 디자인으로 결정되었다. 반면 해상자위대기는 3차례 공모했지만, 3차례 모두 옛 해군과 동일한 디자인이 선정되었고, 예술대 교수에게 의뢰해도 ‘옛 해군 군함기는 이상적인 구성·구도여서 그 이상의 도안은 할 수 없다’고 해서, 옛 해군기와 같은 디자인이 최종적으로 채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옛날 군대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동남아시아, 남아시아에서는 일본국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터키나 몰타 등 옛 해군에 가까운 나라나 남미 등 일본계 이민자가 많은 나라에서는 환영받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군함기’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 해상자위대가 옛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군의 깃발인 욱일기를 그대로 자위대기로 받아들이고 일본 국민들도 이에 대해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욱일기 논란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많다. 패전 이후 주변국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전쟁 책임을 외면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해군 “해상 사열식 때는 욱일기 내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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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군의 요구는 “제주 국제관함식에서 해상 사열식을 할 때 소속 국가의 국기와 주최국인 한국의 태극기 두 깃발만 달아달라”는 것이다. 해군은 이런 요구를 제주 관함식에 참가하는 15개국 모두에게 전달했다. 김태호 해군 공보과장(대령)은 지난 27일 언론 브리핑에서 “해군은 지난 8월31일 관함식 참가국 전체를 대상으로 관함식의 제반 협조사항을 전하면서 ‘해상사열시 자국의 국기와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공지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해군이 참가국 전체에 전달한 제반 협조사항이 무엇보다 욱일기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은 숨길 수 없다. 해군 관계자도 참가국에 이런 요구를 한 배경에 대해 “욱일기 게양에 대해 국내 여론이 안좋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해군이 욱일기 게양 자제 요청의 근거로 제시한 ‘해상사열시 자국 국기와 태극기를 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이, 정말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 실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외국의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게양하고 참가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도 해상자위대 함정의 욱일기 게양을 허용한 사례가 있다. 우리가 국제관함식을 하는 것은 이번이 세번째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첫 행사를 했고,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두번째 행사를 한 바 있다. 당시 국제 관함식엔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달고 참여했다. 당연히 그동안 아무 소리 안하다가 왜 이제와서 문제삼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1998년과 2008년 관함식은 모두 부산에서 했는데, 그때는 함정들이 항구에 정박한 채 사열식을 했지만, 이번에는 함정이 항구에 정박하는 게 아니라 해상에서 열을 지어 운항하며 사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함정이 운항 중에는 통상 소속 나라의 국기를 다는 관례에 따라 이번 행사에는 참가국 해군기가 아닌 국기를 게양할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해상 사열식 때는 일장기와 태극기만 달아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일지, 끝내 외면할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욱일기를 내리는 게 조건이라면 관함식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방위성 관리의 말을 인용하는 등 일본 정부내 격앙된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에서 “자위함 깃발(욱일기) 게양은 (일본) 국내법으로 의무화돼 있다. 국제해양법 조약상으로도 (욱일기는) 군대 소속 선박의 국적을 표시하는 외부 표식에 해당한다. 당연히 거는 것”이라며 한국의 요구에 부정적인 태도를 비쳤다.

사실 일본이 끝내 욱일기 게양을 고집하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욱일기 논란에 대해 “일본은 참가하는 것으로 돼 있고 국제 관례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일본이 공식 입장을 해군에 전달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우리 요구는 해상사열식에 해당국가의 국기와 태극기를 달고 참가해달라는 것뿐이다. 해상사열식 이외의 행사까지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상사열식 행사 이외의 경우에는 해상자위대 깃발인 욱일기를 달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 당국자는 “이런 정도의 행사 협조사항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과 계속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무엇보다 이번 관함식의 해상사열식에서 일본 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게양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옛 일제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 앞에서 사열하게 되는 ‘모양 빠지는’ 그림이 연출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수 선임 기자 suh@hani.co.kr